27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는 국민행동본부 등 극우단체 회원 80여명이 ‘특별 방청객’으로 참여했다. 극우단체 회원들이 박 대통령의 연설을 응원하는 ‘치어리더’ 내지는 ‘호위무사’로 등장한 셈이다. 이런 풍경은 지금 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정치 지향점이나 국정운영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날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이제 상식과는 거리가 먼 극우단체 회원들을 자신의 강력한 버팀목으로 의지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내용은 지금까지 되풀이돼온 억지와 궤변, 자가당착 논리의 재탕이었다. 박 대통령은 심지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정상의 정상화”로까지 규정했다. 세계 각국의 예나 우리의 교과서 편찬 역사를 뒤돌아봐도 역사교과서를 정부가 독점해 만드는 것이 비정상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미 죽은 국정교과서 체제를 되살리려는 시도야말로 가장 어처구니없는 ‘정상의 비정상화’인데도 박 대통령은 눈썹도 까딱하지 않고 그것을 정상화라고 우겼다.
박 대통령이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를 두고 더 이상 왜곡과 혼란이 없어야 한다”느니 “역사 왜곡이나 미화를 걱정하는데 그런 교과서는 저부터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등의 말을 한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떠나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최대 문제점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획일적인 역사관을 강요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데 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계속 “올바른 교과서”란 말을 반복하는 뜻 역시 자명하다. 그것은 자신의 역사해석이 ‘올바르다’는 오만함의 표현이며, 국정교과서의 집필 방향이 대통령의 이런 그릇된 신념을 충실히 따르도록 이미 정해져 있음을 뜻한다. 박 대통령이 “좌시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것도 역설적이게도 교과서 내용을 대통령이 좌지우지하겠다는 오만한 발상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자라나는 세대”를 들먹이며 “자부심” 운운한 대목은 더욱 실소를 자아낸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필요한 것은 ‘편식’이 아니라 고른 영양소 섭취다. 그런데 지금 이 정권은 개방적·다원적 가치관의 더욱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기는커녕 자기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반찬만을 골라 학생들의 입에 억지로 틀어넣으려 하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가 자부심은커녕 거꾸로 가는 나라의 모습에 실망과 환멸부터 배우지 않을까 걱정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도 경제니 개혁이니 하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경제란 단어가 56차례, 청년이라는 말이 32차례, 개혁이 31차례나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이런 단어를 되풀이 강조하는 게 아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나라가 두 동강 난 상태에서 경제가 살아날 리 없고,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가 새롭게 변모할 수 없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들은 모두 아무런 감동도 울림도 전하지 못한 채 공허한 수사만으로 남았다. 그리고 시정연설은 “국론된 분열의 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과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 또다른 계기가 되고 말았다. 억지 논리를 강변하는 대통령, 그리고 여기에 기립박수를 보내는 새누리당과 극우단체 회원들의 뒤틀린 충성 속에 나라는 더욱 멍들어 가고 있다.
Reference : 한겨레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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