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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s/The_Times

정치/경제 위기에 처한 터키


최악의 테러를 맞이한 터키의 최근 정치/경제 현황을 이전 글의 자료까지 통합하여 정리해 봅니다. 

터키 역사상 최악의 테러

2015년 10월 10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벌어진 참혹한 자살 테러는 현재(10월 12일 오전)까지 97명(쿠르드쪽에서는 128명 주장)의 사망자를 내며 터키 역사상 최악의 테러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 10월 10일 앙카라 테러 현장

터키군과 PKK(쿠르드노동자당) 간 적대행위에 반대하는 평화 행진을 위해 모인 다수의 쿠르드족을 목표로 자행된 이번 테러(2명의 남자에 의한 연쇄자살테러로 추정)는 지난 7월 터키-시리아 국경도시 Suruc에서 친쿠르드 청년들의 평화행진 중 터진 자살폭탄으로 37명(주로 쿠르드 청년들)이 사망한 이후 3개월만에 벌어진 참극입니다. 

당시 테러로 1978년 결성이래 2013년 휴전까지 무려 4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PKK(쿠르드노동자당)와 터키정부 간 무력충돌이 다시 재개되었습니다.(휴전의 큰 계기가 된 PKK의 전설적 지도자 오잘란의 체포과정은 그리스와의 분쟁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리스 현대사 참조

덕분에 터키 동남부 쿠르드 밀집지역은 다시 한번 게엄령이 내려졌으며, PKK의 청년무장조직 YDG-H는 도시게릴라 전을 펼치며 50여명의 터키군경을 살해했습니다.

터키군은 반격으로 자국 영토인 동남부뿐만 아니라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 산간의 PKK 거점지역에 대해 공습을 가해 400여명의 PKK 조직원과 다수의 쿠르드 민간인을 살해했습니다. 

* 터키-쿠르드족 간 주요 충돌 지역

* PKK의 여성 게릴라들

현재까지 이 테러가 누구의 소행인지는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 않으나 터키 정부는 이정도 규모의 연쇄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킬만한 단체는 4군데이며 ISIS와 PKK가 포함되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테러는 장소가 터키 수도 앙카라라는 점도 놀랍지만 그 시점이 지난 6월의 총선에서 집권당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AKP)이 과반 의석수 획득에 실패하면서 11월 1일 재선거를 실시하기로 한 상황에서 벌어진 것도 유의할 대목입니다. 

터키의 정치적 위기: 에르도안의 권력 독점의 길

키는 아시다시피 아타튀르크의 건국 이후 일관되게 세속주의와 유럽지향 노선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정의개발당(AKP)의 집권으로 이스탄불 시장을 역임했던 에르도안이 총리에 오릅니다. 

당초 에르도안이 이슬람주의를 강화하면서 세속주의의 첨병을 자처한 군부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에르도안은 한동안 온건주의를 내세우며 세속주의 세력을 자극하지 않다가 2010년 일단의 군간부들이 2003년 집권직후 부터 쿠테타를 모의했다는 소위 Sledgehammer 사건을 통해 군부내 반대세력을 일거에 숙청시킵니다. 

당시 쿠데타 음모는 모스크에 폭탄을 터뜨리고 이를 오랜 숙적인 그리스의 소행이라고 하면서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었는데 여러 증언에 따르면 구체적 계획이었다기 보다는 군 엘리트 집단 회의 중 나온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는 설이 많습니다.

이 사건으로 365명의 혐의자 중 300명이 수감되어 현역 장성의 20%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에르도안은 반정부 성향 군인들을 완전히 제거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무리한 법집행으로 인해 2014년 터키법원에 의해 아직 수감 중인 관련자 전원에 대해서 석방명령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 군부 길들이기에 성공한 에르도안 

Prime Minister Tayyip Erdogan attends a ceremony in Ankara with members of the High Military Council - 30 November 2010

이로써 에르도안은 군부를 손아귀에 넣게 됩니다. 2014년에는 자신과 측근에 대한 부패에 날을 세우던 사법부와 경찰의 반대파를 일거에 숙청시켰습니다. 

 

에르도안의 장기 집권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성과 덕분이었습니다. 

터키는 7천7백만의 인구로 한국보다 2천7백만명이나 많고 아타튀르크가 1930년대부터 강력한 서방화 정책을 펼쳤으나  1985년을 지나면서 GDP가 한국에 뒤처집니다. 

2000년대 초까지 횡보하던 터키 GDP는 에르도안 집권 이후 연평균 7%의 고속성장을 이어갑니다. 11년의 집권기간 동안 GDP가 3,030억 달러에서 8,172억 달러로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특히 에르도안 총리가 SOC 투자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터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아시아 지역 곳곳에 도로, 교량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아시아 농촌의 저학력, 저소득, 수니-이슬람 검은 투르크인들은 아타튀르크 이래로 이스탄불의 서구화된 하얀 투르크들의 권력과 부의 독점으로 인하여 소외를 받아왔기에 에르도안의 인프라 개발과 이슬람주의 복귀 정책은 이들을 에르도안의 열렬한 지지세력으로 만들었습니다. 

* 터키의 GDP 성장 추이

그러나 집권기간이 10년이 넘어가면서 그가 벌인 토건 중심의 경제개발과 이슬람주의 강화 노선은 부정부패 심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약화로 이어졌습니다. 

2013년 말부터 대규모 부패추문이 터져나왔습니다. 

먼저 에르도안 정부 고위인사 아들들이 연루된 부패사건이 터지더니만 2013년 12월에는 급기야 에르도안 총리가 아들에게 삼촌들에게 연락해서 빨리 돈을 옮기라는 전화 녹취록(총리: 돈을 다 숨겼니? 차남: 아직 3천만 유로가 남았습니다.)이 인터넷에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수상한 돈의 총액이 무려 1조600억원을 넘는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습니다. 결국 이사건 이후 에르도안이 유튜브, 트위터 등 인터넷을 규제하기 시작합니다.

에르도안은 감청파일의 공개에 최대 정적 굴렌과 사법부에 속한 그의 지지자들이 관여되어 있다고 보고 수천명의 판사, 검사, 경찰관을 전보조치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폭로에도 불구하고 2014년 3월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에르도안이 이끄는 AKP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2014년 5월에는 탄광사고가 발생하여 무려 301명이 사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에르도안 총리가 현장에 방문해서는 탄광은 원래 위험한 곳이라는 발언을 하였고 아래 사진의 총리 보좌관은 사고 처리에 항의하는 시민을 폭행하였느데 이 폭행 장면이 여과없이 찍히면서 시민의 분노를 샀습니다.   

* 2014년 5월 에르도안 총리의 탄광 사고 현장 방문시 보좌관의 시민 폭행 장면

Turkey mining disaster

한편 에르도안은 아래 사진(좌측부터 아타튀르크, 굴 터키대통령(간선으로 지명된 이전 대통령), 에르도안 총리)처럼 아타튀르크와 자신을 동격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직선제 초대 대통령으로서 아타튀르크도 갖지 못한 민주주의적 정당성 마저 확보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타튀르크(좌), 굴 전 터키대통령(간선으로 지명된 이전 대통령, 중), 에르도안 신임 대통령(우)

에르도안은 자신을 아타튀르크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것과 함께 알게 모르게 아타튀르크의 격하 및 아타튀르크의 유지인 세속화를 거스르는 운동에도 열심이었습니다. 

이슬람 세력의 본거지인 소아시아 지역의 무슬림 지도자들은 아타튀르크 이래 노예처럼 살다가 에르도안 집권이후 비로서 사람답게 살게되었다고 할 정도이니 이들에게 뇌물이나 탄광 사고 뒤처리 문제는 정말 사소한 티끌 정도로도 취급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 이슬람 세력이 점점 힘을 회복하면서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를 이참에 되돌리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습니다. 

비잔틴 제국 시절 동방정교의 성당으로 쓰였다가 오스만 제국시절 모스크라 전환되었으나 아타튀르크의 명령으로 박물관과 같은 종교 중립적 건물로 전환된 시설을 다시 모스크로 전환하려는 운동이 대표적입니다. 

이미 몇개의 건물이 모스크로 전환되었으며 이제는 아이야 소피아(현 박물관)의 모스크 전환도 점점 힘을 얻고 있는 형국입니다.

 

* 아이야 소피아 

에르도안이 이렇게 장기집권을 한데는 경제적 성과 못지 않게 정치적 선동술과 지리멸렬한 야권의 힘이 컸습니다. 

에르도안은 탄광사고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이 모든 것이 유대인의 음모다라는 주장을 피며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탄광 경영자의 사위가 유대인이었다고 하면서 유대인의 로비로 이런 참사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터키에서 유대인 그것도 탐욕스런 유대자본 이라는 딱지야말로 모든 이슈를 잠재우는 특효약이었습니다. 

또한 반 에르도안 정치세력을 이끌 구심점이 없다보니 에르도안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빈약한 지식인, 중산층 세력이 2014년까지 의존하는 대안세력은 원래 에르도안과 동업을 하며 군부와 사법부를 무력화시키고 이슬람주의자들로 채운 굴렌이었습니다.  

굴렌은 얼마전까지 에르도안의 가장 강력한 정적으로서 미국 펜실베니아에선 준 망명 생활을 하며 뇌물 스캔들의 폭로의 배후에 서서 에르도안을 압박했지만 결국 사법부 숙청으로 그의 지지자들은 대부분 쫓겨나거나 감옥에 갇힌 상태입니다.  

이제 대부분의 정적들이 사라진 에르도안은 2015년 6월 총선에서 전체 550석 의석 중 400석 이상(최소 330석 이상)의 압도적 승리를 차지해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헌법을 개정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최초의 직선 대통령에 오르긴 했지만 의원내각제 체제에서 대통령은 명목상의 국가수반일 뿐이었기에 이를 바꾸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2015년 6월 선거는 그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AKP가 40.9%를 획득해 전체 의석 과반에도 못미치는 258석을 차치한 것입니다. 

2위 정당으로 케말주의자 공화주의 정당인 CHP가 132석을 얻긴 했지만 이번 총선의 진정한 승자는 쿠르드 민주당(HDP)입니다. 터키 동남부의 쿠르드 밀집지역을 기반으로 한 HDP는 이번 선거를 통해 민족적 배타성보다는 진정한 터키 정당으로 야당의 역할을 맡겠다는 주장을 펼치며 지지기반을 넓혔습니다.  

쿠르드 오바마라고 불리는 공동 대표 Selahattin Demirtas의 개인적 인기가 더해지면서 지난 총선에서 29석에 그쳤던 것을 80석의 대승을 걷었습니다. 

 

* 2015년 6월 총선 결과 

 

* 중대선거구에서 1위 정당을 표시한 2015 총선 지도 노란색은 AKP, 보라색은 HDP, 적색은 CHP

Parlamentswahl in der Türkei 2015.svg

그러자 에르도안과 AKP는 11월 1일 재선거를 치룸으로써 다시 한 번 개헌정국을 이끌고자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PKK와의 무력충돌이 벌어진 것입니다. 

터키내 쿠르드 인구는 정확한 수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소 800만명에서 1,000만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지난 6월 선거에서 자신의 기대를 무참히 꺾어버린 친쿠르드 정당 HDP는 에르도안이 PKK와의 충돌을 터키 민족주의 자극에 활용하면서 얼마 전에는 전국적으로 당사무실이 파괴되기도 하였습니다.  

잇따른 테러의 진정한 배후가 누구인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에르도안의 권력독점의 야욕은 터키를 점점 정치적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ISIS로서도 터키가 시리아내 가장 큰 적들 중 하나인 PKK를 약화시키고 이들의 신경을 터키로 돌리게 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작지 않아 보입니다. 

터키의 경제적 위기: 신흥국 금융위기의 시발점(?)

한때 잘나가던 터키 경제는 현재 미국발 금리인상의 유탄을 맞기 쉬운 취약국 중 하나로 급격히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의 자본동결지수(capital freeze index)는 경상수지, 외채, 민간부채 증가를 고려해서 만들어졌는데 일종의 종합위기지표라고 할 수 있는 이 지수의 2014년 값을 보면 베네수엘라, 터키, 우크라이나, 인도네시아, 알제리아 순으로 이미 문제점이 잘 알려진 베네수엘아에 이어 터키가 2위 입니다. 


터키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민간기업의 대출이 2014년 가장 크게 늘어난 국가로 자본이탈이 가속화 될 경우 한계기업의 급증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외환보유고 대비 외채 비중에서 터키는180% 정도로 실질적으로 디폴트에 가까운 우크라이나와 곧 그 뒤를 따를 베네수엘라 다음인 3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용위험의 시장가격지표인 CDS 스프레드를 보면 터키는 300bp 가까운 값으로 브라질과 러시아 다음입니다.

* 신용등급 대비 CDS 프리미엄

Chart - CDS versus rating

물론 몇개의 금융 지표로 터키의 경제상황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 터키 정국의 혼란함은 시기적으로도 매우 안좋은 때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에르도안의 권력추구 야욕 속에서 자칫 신흥국 위기의 첫 물꼬가 터키에서 터져나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 간단히 살펴본 터키 상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